메뉴 건너뛰기

음악과공연

[Opera]Verdi - 돈카를로 리뷰

2006.12.04 17:55

하이파이뮤직 조회 수:11644 추천:837



베르디 돈카를로

개요

베르디의 오페라들 중 중요한 변곡점을 이루는 작품들에 주목하자면, 그를 이탈리아 국민작곡가로 만들어 준 세번째 작품 나부코, 최초로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 주었고 특유의 풍부한 멜로디라인을 확실히 드러낸 다섯번째 작품 에르나니, 작곡기법에서 혁신적이었고 이탈리아 오페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리골레토, 보기 드물게 시종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지는 시몬복카네그라 등이 있지만, 역시 후기의 역작들인 돈카를로, 오텔로, 팔스타프가 가장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돈카를로의 중요한 의미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노래를 보조하는 역할에 충실해왔던 오케스트라가 성악파트와 거의 대등한 활약을 하게 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부분을 “그랜드기타”라고 비아냥거린 바그너도 돈카를로에 대해서는 그런 비판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한 주제도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정치, 종교 등이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등장인물 간의 갈등구조가 아주 복잡하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는 오텔로만큼이나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체적인 연주시간이 너무 길고, 유려한 선율의 아리아보다는 극적인 중창이 드라마의 뼈대를 이루는 점, 테너, 소프라노보다 저음가수들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중기 3대작이나 가면무도회에 비하면 대중적 인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타이틀롤인 돈카를로를 노래하는 테너가 첫 부분을 제외하면 솔로가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테너보다 다른 성부의 솔로가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오리지널 5막 프랑스어 버전, 1막이 삭제된 4막 이탈리아어 버전, 5막 버전이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버전 등 edition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도 감상자 입장에서는 다소 혼란스럽다.
돈카를로는 라트라비아타처럼 첫눈에 반할 수 있는 오페라는 아니다. 그러나 이 거대하고 복잡한 대작의 매력에 한번 빠져들면 다른 오페라들이 다소 싱겁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중독성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재정적 능력을 보유한 일류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면 사실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음반제작도 결코 쉽지 않다. 테너, 소프라노, 바리톤, 메조 소프라노, 베이스 2명 등 6명의 뛰어난 가수가 필요하며 오케스트라도 최고의 기량이 요구된다. 당연히 마에스트로의 역량을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감상포인트

1막 퐁텐블로 숲의 장면
독일 등에서 선호하는 4막 버전에서는 바로 이 퐁텐블로 숲의 장면인 1막이 생략된다. 4막 버전과 5막 버전 중 어떤 것이 좋으냐에 대한 정답을 가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오페라를 시종 지배하는 고뇌와 갈등, 슬픔의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관점에서는 4막 버전이 나을 것이다. 특히 실제 오페라극장 공연 시에는 공연시간 및 가수들의 부담을 감안할 때 4막 버전이 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퐁텐블로 장면의 하이라이트인 카를로와 엘리자베타의 2중창의 매력, 바그너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서 라이트모티프에 가까운 선율이 존재하는 이 오페라의 특징을 감안하면 5막 버전의 장점이 크다고 할 것이다.
5막 버전을 채택하는 경우에도 Prelude et Introduction(원래 10분 정도)은 대부분 생략되지만 1983년 메트 공연에서는 이 도입부도 그대로 살리고 있다. 1막 첫 부분에서 돈카를로는 로만짜(Io la vidi al suo sorriso…)를 노래한다. 오페라 아이다의 첫 부분에 나오는 “청아한 아이다”는 실제 공연에서 테너가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것으로 유명한데(목소리가 워밍업되기도 전에 어렵고 긴 아리아를 소화해야 하므로), 돈카를로의 경우에도 정도는 덜하지만 주연테너가수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첫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파리에서 6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퐁텐블로 숲은 상당히 깊다고 한다. 오페라에서도 앙리 2세의 딸인 엘리자베타가 길을 잃어 헤매다가 돈카를로를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다. 카를로는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에 와 있다. 두 나라간의 오랜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표시로 카를로와 엘리자베타가 결혼을 하게 예정되어 있다. 카를로와 엘리자베타의 2중창은 자신을 그냥 스페인사람이라고 하면서 카를로 왕자의 메신저라고 신분을 속이는(물론 엘리자베타도 짐작을 했겠지만) 카를로가 자신의 초상화를 엘리자베타에게 넘겨주고(이 초상화는 나중에 4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가 왕자임을 알게 된 엘리자베타는 기쁨과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다(Di qual amor, di quant’ardor…). 그러나 가혹한 운명은 사랑의 2중창이 엘리자베타의 page 테발도가 나타나서 중지되고 “Regina, vi saluto, sposo a Filippo re”라는 청천벽력 같은 대사를 하면서 시작된다. 이 오페라에서 유일하게 감미로운 분위기는 갑자기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필리포 2세의 특사로 프랑스를 방문한 Lerma 백작은 엘리자베타가 필리포 2세의 청혼을 자유의사(?)로 결정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엘리자베타는 오랜 전쟁에 지친 시민(?)들의 열망을 거부하지 못하고 필리포 2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2막 1장 스페인 산 후스트 수도원
호른이 주도하는 장중한 오케스트라 서주가 일품이며 합창도 아주 효과적이다. 사제의 노래는 분량이 많지 않지만 극의 분위기상 상당히 중요한 편이다. 그래서 카라얀은 EMI 음반 녹음시 조연임에도 호세반담을 기용하는 사치(?)를 서슴지 않은 것 같다. 4막 버전의 경우 사제의 노래가 끝나자 마자 카를로의 아리오조(Io l'ho perduta…)가 등장한다. 5막 버전 첫부분의 아리아를 대체한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로드리고 후작이 등장하며, 카를로가 엘리자베타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고백받는다.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적 이상을 꿈꾸는 로드리고는 필리포 2세에게 요청하여 카를로가 플랑드르로 갈 수 있도록 시도해 볼 것을 권유한다(당시 무적함대 시절 전성기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플랑드르 지역은 폭정에 신음하고 있었다). 카를로와 로드리고의 대화 도중 필리포 2세와 엘리자베타가 수도원에 들어 온다. 필리포 2세는 수도원에서 아들의 모습을 보자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진다. 수도원 장면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카를로와 로드리고의 2중창(Dio che nell’alma infondere…)은 이탈리아 오페라에 나타나는 테너와 바리톤의 2중창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2막 1장은 음악적, 극적으로 정말 빈틈없는 완벽성이 느껴진다. 카라얀이 4막 버전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2막 2장 수도원 인접 정원
2막 2장은 연주시간이 상당히 긴 편이다. 프랑스식 그랜드 오페라를 지향하다 보니 어느 정도 사족이 첨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장면에 테발도의 만돌린에 맞춰 에볼리 공녀가 베일의 노래(Nel giardin del bello...)를 한다. 이 노래에는 3막 1장의 장면이 예시적으로 암시되어 있다. 로드리고가 엘리자베타를 알현하면서 카를로의 편지를 몰래 전달한다. 로드리고도 비교적 가벼운 노래를 하나 부른다. 이어서 카를로가 엘리자베타를 만나면서 아주 심각한 2중창이 시작된다(Io vengo a domandar…). 이 2중창은 테너와 소프라노 모두에게 상당히 기교적으로 도전적이다. 2중창이 끝나면서 카를로가 떠나자마자 필리포 2세가 등장한다. 왕비를 아무도 에스코트하지 않는데 격분한 왕은 아렘베르 백작부인(엘리자베타와 함께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건너왔음)에게 프랑스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는데 이는 왕비를 모욕한 셈이다. 이에 엘리자베타는 백작부인을 위로하는 아리아(Non pianger,…)를 노래한다. 엘리자베타의 노래가 끝난 후 필리포 2세는 로드리고를 불러 세워서 이 오페라에서 가장 특징적인 장면 중의 하나인 2중창을 시작한다. 로드리고는 왕에게 작심하고 직언을 고한다. 바리톤과 베이스가 주고 받는 묵직한 노래는 두 사람의 정치적 이견에 의해서 매우 극적인 갈등이 표출된다(물론 실제로 로드리고가 이 오페라 대사 수위의 발언을 했다면 즉각 처형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필리포 2세는 로드리고의 강직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엘리자베타와 카를로를 잘 감시하라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한다. 아물러 종교재판장을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2막 2장의 핵심은 결국 2중창 2개라고 할 수 있다.

3막 1장 마드리드 소재 왕비의 정원
비교적 짧지만 역시 음악적, 극적으로 아주 짜임새 있는 부분이다. 카를로는 어둠속에서 베일에 가려진 에볼리 공녀를 엘리자베타로 잘못 알고 사랑을 노래한다(Sei tu, sei tu, bell’adorata…). 그러나 베일이 벗겨지면서 자신의 착각을 깨달은 카를로는 적당히 얼버무리려 하지만 에볼리는 카를로가 왕비를 사랑하고 있음을 간파한다. 이때 로드리고가 등장하여 2중창이 3중창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로드리고가 왕의 최측근임이 밝혀진다(에볼리 공녀는 사실 왕의 정부이다). 카를로는 순간 로드리고를 의심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의지할 사람은 로드리고밖에 없음을 확인한다. 2중창과 3중창의 연결이 절묘하며 서정적인 분위기와 극적인 분위기가 아주 잘 조화되어 있는 명장면이다.

3막 2장 마드리드의 대성당 앞 광장 (이교도 화형식 장면)
전형적인 그랜드 오페라 양식이 나타나 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및 합창. 이교도 화형식 도중 카를로는 6명의 플랑드르 대표들과 함께 나타나 왕의 자비를 요청한다. 왕은 격분하여 이들을 내칠려고 하는데, 카를로는 왕에게 자신을 플랑드르로 보내어 국정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다. 왕이 받아들이지 않자 카를로는 칼을 뽑는 무모한 행동을 한다. 호위병들이 아무도 카를로를 제지하지 못하자, 왕이 칼을 빼드는 긴박한 상황이 되었으나 로드리고가 카를로의 칼을 거두게 한다. 이에 왕은 로드리고에게 공작을 제수하고 화형식을 계속 진행한다.

4막 1장 필리포 2세의 서재

4막 1장부터 5막까지는 정말 사족 없이 완벽한 흐름이다. 이 오페라의 타이틀롤은 테너이지만 이 오페라를 대표하는 아리아는 바로 이 장면의 첫 부분을 장식하는 필리포 2세의 독백(Ella giammai m’amo…)이다. 애절한 첼로 연주로부터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통틀어 최고의 베이스 솔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리포 2세의 독백이 끝난 후 오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2중창이 이어진다. 베이스와 베이스의 2중창이다. 이 부분에서 로마 카톨릭이 지배하는 시절의 종교와 정치의 갈등이 잘 묘사되고 있다. 종교재판장 역의 베이스는 필리포 2세보다 더 소리가 어둡고 무게중심이 낮아야 한다. 한명도 아니고 두명의 뛰어난 베이스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실제 무대에서 이 2중창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베르디는 종교재판장은 나이가 아주 많고 눈이 먼 캐릭터로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왕이 아들 때문에 고민하는 심정을 토로하자 종교재판장은 단호하게 카를로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종교재판장은 아주 위험한 인물인 로드리고를 자신에게 넘길 것을 요구한다. 왕은 격분해서 이에 반발하지만 결국 종교재판장 앞에서 왕은 무력할 수 밖에 없다(il trono piegar dovra sempre all’altare!).
왕과 종교재판장의 면담이 끝나고 엘리자베타가 흥분하여 왕을 알현한다. 엘리자베타의 보석상자가 없어진 것이다(에볼리가 훔쳐서 필리포 2세에게 전달했다). 왕은 상자를 열어서 카를로의 초상화를 보여주면서 엘리자베타를 다그친다. 엘리자베타는 당당하게 원래 카를로와 자신이 약혼한 사이였음을 설명한다(Ben lo sapete…). 그러나 자신은 결코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왕은 엘리자베타의 말이 너무 방자하다고 몰아 붙이다가 결국 매춘부라는 폭언을 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엘리자베타는 기절하고 만다. 왕이 도움을 청하는 순간 에볼리가 등장하여 자신의 행동을 자책한다. 의식을 회복한 엘리자베타에게 에볼리는 자신의 모든 잘못을 고백한다. 처음에 에볼리가 카를로를 사랑했다는 고백에 엘리자베타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지만 에볼리가 왕의 정부였다는 연이은 고백에 충격을 받고 당장 떠나라고 명한다. 이 장면의 피날레로 유명한 메조 소프라노 아리아 (O don fatale…)가 불러진다. 엘리자베타의 등장부터 에볼리의 아리아까지 이어지는 부분 또한 정말 음악적, 극적으로 훌륭하다.  

4막 2장 카를로가 갇혀 있는 감옥
이 장면은 로드리고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감옥의 카를로를 찾아 와서 자신이 대신 반역죄로 죽게 될 것이며 카를로에게 플랑드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Per me giunto…에서 시작하여 Io morro…로 이어지는 로드리고 최후의 아리아는 명바리톤이라면 누구나 도전해 보고 싶을 정도로 멋진 부분이며 갈라 콘서트에서 따로 자주 연주되기도 한다. 로드리고가 최후를 맞은 후 감옥으로 군중들이 몰려 와 카를로의 석방을 요구한다. 이 혼란의 와중에 에볼리는 가면을 쓰고 등장하여 카를로가 도망치도록 한다. 종교재판장이 등장하여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혼란을 수습한다.

5막 산 후스트 수도원 (2막 1장과 동일한 장소)
4막 버전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같은 장소로 설정하여 대칭적인 구조로 극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타는 Tu che la vanita…라는 아주 스케일이 큰 아리아를 노래한다. 리리코 스핀토 소프라노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대곡이다. 이어서 카를로가 등장하여 최후의 2중창을 노래한다. 이 소프라노와 테너의 2중창 또한 정말 뛰어난 음악이다. 2중창이 끝나는 순간 필리포 2세와 종교재판장이 동시에 등장해서 카를로를 처단하려고 한다. 그러나 무덤에서 샤를르 5세가 카를로를 끌어 들이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피날레 장면이 약간 황당한 설정이라는 것이 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아마 오페라 전체를 짓눌러 왔던 비극의 마지막을 너무 비참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요 영상물 및 음반

주요 배역은 돈카를로, 엘리자베타, 로드리고, 필리포 2세, 에볼리, 종교재판장 순서임

1983년 3월 26일 메트로폴리탄 실황 (DG, 213분)

Placido Domingo, Mirella Freni, Louis Quilico, Nicolai Ghiaurov, Grace Bumbry,
Ferruccio Furlanetto,  James Levine 지휘, John Dexter 연출


이 메트 실황은 재정적 여유가 있는 대형 오페라 극장이 전통적 방식으로 이 대작을 원형 그래도 연출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영상물은 하루의 공연이 그대로 라이브로 제작된 것으로 요즘처럼 여러날의 공연을 바탕으로 편집한 방식이 아니다. 이 공연은 주말을 이용하여 오후1시에 시작되었다. 레바인은 5막을 편의상 3막으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1막 1장, 2장, 3장, 2막 1장, 2장, 3막 1장, 2장, 3장의 순서로 전개된다. 7개의 무대세트가 준비되어 있다. 이 영상물에서 최고의 스타는 필리포 2세 역의 갸우로프이다. 그의 실제 부인인 프레니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1929년 불가리아 출생인 갸우로프...개인적으로 20세기 후반 최고의 베이스가수라고 생각한다. 필리포 2세역은 정말 갸우로프의 목소리 및 외모와 잘 어울린다. 1986년 카라얀의 잘츠부르그 실황에서 필리포 2세역을 노래한 풀라네토가 종교재판장 역을 노래하므로 현재까지 등장한 영상물 중 베이스-베이스 조합으로는 최강이다. 도밍고는 고음역이 시원하게 터지지 않아서 시종 힘들게 노래하고 있다. 특히 1막 3장(원래 2막 2장)에서 엘리자베타와의 2중창에서는 소리가 뒤집어지는 장면도 나온다. 편집이 불가능한 라이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DG의 복각은 매우 훌륭하다. 화질과 음질이 비교적 열악한 1980년대 초반 영상물인 것을 감안하면...사운드는 아주 close balance를 채택하여 해상도 및 정보량 부족을 효과적으로 커버하고 있다.


1992년 12월 밀라노 라스칼라 실황 (EMI, 182분) 4막 버전

Luciano Pavarotti, Daniel Dessi, Paolo Coni, Samuel Ramey, Luciana D’Intino,
Alexander Anisimov,  Riccardo Muti 지휘, Franco Zeffirelli 연출


파바로티의 돈카를로 첫 출연으로 높은 관심이 집중되었던 92~93년 라스칼라 공연실황이다. 개막공연에서 파바로티는 음정을 잘못잡는 실수로 악명높은 이탈리아의 예민한 귀를 가진 팬들의 야유를 받아서 많은 뒷얘기를 낳았었다. 물론 이 영상물은 실수를 했던 개막공연 장면은 아니다. 80년대 중반이후 목소리의 무게중심이 낮아지면서 리리코 스핀토역 출연 비중이 높아졌던 파바로티의 경우 도밍고의 돈카를로가 들려주지 못하는 명쾌한 고음처리를 하고 있으며 부분부분 특유의 빛나는 음색을 들려주지만 전체적으로 리허설이 부족한 듯 딕션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보인다. 이 영상물은 소프라노 데시의 지명도를 높여준 계기가 되기는 했으나 엘리자베타역을 충분히 장악하여 소화하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라미의 필리포 2세역은 역시 갸우로프의 카리스마에는 미치지 못한다. 라스칼라 극장의 악명높은 음향때문인지 녹음의 다이내믹 레인지도 충분하지 못하다. 제피렐리의 화려한 연출, 파바로티의 첫 카를로 출연이라는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인이 많지만 우선적으로 추천하기에는 약점이 많다고 하겠다.


1996년 3월 파리 샤틀레 실황 (Warner, 211분)

Roberto Alagna, Karita Mattila, Thomas Hampson, Jose Van Dam, Waltraud Meier,
Eric Halfvarson,  Orchestre de Paris, Antonio Papano 지휘


오리지널 프랑스어 버전이다. 사실 1983년 메트 실황에 버금갈 수 있는 화려한 캐스팅의 실황 공연은 더 이상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뛰어난 오페라 지휘자로 급부상한 안토니오 파파노는 기존의 명연들에 손색없는 훌륭한 연주를 이끌어냈으며, 주로 연주되는 이탈리어 버전과는 또 다른 참신함을 느낄 수 있다. 출연가수들의 노래실력 및 연기력도 최상급이다. 특히 시각적으로 역대 최고의 출연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라냐는 유창한 프랑스어 딕션으로 약간은 소화하기에 무겁지 않나 싶은 카를로역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좀 더 소리결이 두터웠으면 하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전반적인 딕션과 고음처리가 훌륭하다. 이 영상물의 최고 강점은 핀란드의 비너스라고 불려지는 카리타 마틸라의 탁월한 엘리자베타역에 있다. 이 당시 무대에서 마틸라의 모습은 정말 찬란하다. 물론 가창은 개인적으로 역대 최강의 엘리자베타로 평가하고 싶다. 바그너 전문가수로 잘 알려진 마이어는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지만 역시 에볼리역을 잘 소화하고 있으며 시각적으로도 설득력이 강하다. 4막 1장에서의 아리아는 아주 훌륭하다. 햄프슨의 로드리고 또한 훌륭하다. 적어도 이 영상물로만 판단하면 햄프슨의 베르디 연주에 대해 그렇게 비판적으로 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카라얀 음반에서 사제역을 노래했던 호세반담이 필리포 2세역을 노래하는데...아무래도 갸우로프 정도의 카리스마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프랑스어 딕션이 좋고(당연하겠지만) 연기력도 좋다. 다만 종교재판장 역의 베이스 가수는 많이 부족한 느낌이고 이 영상물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다. 이 영상물의 무대연출은 다소 현대적인 성향이지만 요즘같이 썰렁하지는 않으며 특히 흰색과 붉은색, 검은색을 순수한 톤으로 구성한 색채감각이 무척 세련된 느낌이다 악보상으로 전통적인 이탈리아어 버전과 다른 부분이 상당한데, 2막 1장 카를로와 로드리고의 2중창이 시작되기 전의 장면, 2막 2장 필리포 2세와 로드리고의 2중창, 3막 1장 시작부분에 에볼리와 엘리자베타의 간단한 대화와 합창이 포함, 4막 1장에서 뒷부분, 4막 2장 로드리고의 죽음 이후 카를로의 필리포 2세의 이중창 포함, 5막 카를로와 엘리자베타의 2중창 등이다. 다만 워너에서 3시간 30분이 넘는 공연을 DVD 1장에 담았고 PCM 트랙이 없다. 가변비트 방식인 DVD에서 이런식으로 수록을 하면 당연히 할당되는 비트레이트수가 높지 못하므로 사운드의 정보량이 빈약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PCM트랙을 포함하여 2장으로 재발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소프라노 카리타 마틸라




2004년 De Nederlandse Opera 실황 (Opus Arte, 169분) 4막 버전

Rolando Villazon, Amanda Roocroft, Dwayne Croft, Robert Lloyd, Violeta Urmana,
Jaakko Ryhanen, Royal Concertgebouw, Riccardo Chailly 지휘


이 영상물을 보니까 연출이 어딘지 눈에 익숙하다. 윌리 데커 연출...그렇구나 2005년 너무나 유명해진 잘츠부르그 라트라비아타의 연출자... 라트라비아타보다는 조금 더 무대장치가 있는 편이지만 1막부터 4막까지 같은 기본적으로 같은 세트이다. 막대한 비용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려운 돈카를로 공연도 충분히 경제적으로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영상물은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갈라진다. 물론 Opus Arte다운 뛰어난 음질, 다만 무대가 단조롭고 회색톤이다 보니 좋은 화질이 부각되기는 좀 어렵다. 그리고 비야존의 뛰어난 노래, 역대 선배 돈카를로를 단숨에 능가하는 수준이다. 목소리의 무게, 연기력, 게다가 도밍고와 다소 비슷한 음색이 느껴지지만 고음은 훨씬 확실하게 구사한다. 카를로를 이 정도로 잘 하니, 오히려 라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역은 이 가수에게 평이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한편 로열 콘서트헤보의 오페라 연주...정말 드문 기회이다. 샤이가 상임을 담당한 마지막해인 2004년...과연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는 천의무봉이다. 1978년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필 이후로 돈카를로 오케스트라 부분으로는 최고라 할 수 있다. 샤이와 콘서트헤보의 오랜 호흡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로드리고 역과 에볼리 역의 노래도 수준급이다. 바리톤 Dwayne Croft는 1997년 메트의 페도라 실황에서 처음 모습을 접했는데 매우 탄탄한 기량을 지닌 가수이다. 또 에볼리역의 Urmana도 2000년 5월 1일 아바도와 베를린필의 합창교향곡 영상물에 등장했었다. 그러나 엘리자베타 역의 소프라노는 아무래도 경직된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로이드의 필리포 2세는 너무 미흡하다. 아무래도 로이드에게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적인 해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아무튼 비야존과 콘서트헤보에 초점을 맞춘다면 충분히 권할 수 있지만 단점이 너무 뚜렷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1971년 EMI 음반

  


Placido Domingo, Moserat Caballe, Sherill Milnes, Ruggiero Raimondi, Sherley Verett, Giovanni Fionnani, ROHO, Giulini 지휘

이탈리아어 5막 버전이다. 만 30세의 도밍고(물론 도밍고의 실제나이가 호적보다 7살이 많다는 것이 정설이므로 실제로는 30대 중반)의 둥글고 윤기있는 목소리의 카를로, 미국의 명 베르디 바리톤 밀른즈, 그리고 젊은 나이임에도 필리포 2세역을 잘 소화하고 있는 라이몬디, 나중에 맥베스 부인으로 유명해진 다소 어두운 목소리의 베레트 등의 호화 캐스팅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지휘자 줄리니의 진가가 잘 발휘되고 있다. 다만 카바예의 경우 아주 넓은 대역의 성역을 과시하고 있지만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키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CD로 처음 발매될 때 음반재킷의 젊은 도밍고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결국 EMI에서 GROC 복각으로 카라얀 음반을 제치고 줄리니를 선택했다.


1978년 EMI 음반


Jose Carreras, Mirella Freni, Piero Cappuccilli, Nicolai Ghiaurov, Agnes Baltsa,
Ruggiero Raimondi, BPO, Karajan 지휘


역대 오페라 음반 중 가장 호화로운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다. 6명의 주연만으로도 화려함의 극치이지만 조연의 이름은 더 경이롭다. 사제역에 호세 반담, 천상의 목소리는 바바라 헨드릭스, 테발도는 에디타 그루베로바...과연 카라얀이라고 할 수 밖에...
이 음반은 이탈리아어 4막 버전인데, 주연 테너와 소프라노 선택은 성량 및 목소리의 스케일보다도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에 역점을 두고 있다. 갸우로프(필리포 2세)와 라이몬디(종교재판장)가 맞대결을 하는 장면...오페라 음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1986년 아바도의 프랑스어 버전 DG 녹음에서는 두 베이스 가수가 역할을 맞 바꾸기도 했다. 이 음반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 같아서 다소 아쉬운 점을 주로 언급하고자 한다.... 사실 이 음반은 CD 시대에 와서 다소 홀대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매가격이 저렴한 것은 좋은데처음 구입하고나서 대본에 영어 번역이 없다는 사실에 정말 황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비록 줄리니 음반이 GROC로 나왔지만 이 음반도 좀 제대로 포장해서 복각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카레라스와 카푸칠리는 1막 1장 (4막 버전임)의 2중창에서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카푸칠리의 컨디션은 베스트가 아니다. 물론 녹음 밸런스도 안정적이지 못하다. 전체적으로 베를린필의 웅장한 사운드가 가수들을 압도하는 장면이 너무 많고 가수들의 소리 강약대조가 너무 극명해서 약한 부분이 청취자의 귀에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EMI에서 이 음반을 좀 잘 복각해서 발매해 주었으면 좋겠다.

본 리뷰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1986년 잘츠부르그 실황 (카라얀 지휘, 소니 DVD),
1960년대 솔티 음반(Decca), 1980년대 아바도의 음반 (프랑스어 버전, DG)도 돈카를로를 언급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자료들이다.


글: 장동기
편집: Hifimusic

*게시물에 대한 권리는 하이파이뮤직과 게시물의 저작자에 있습니다.
권리를 가진 당사자에게 승락받지 않은 게시물의 무단 전재나 상업적인 활용을 금합니다.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공지 2017년 하반기 하이파이뮤직 시청회를 개최합니다. [1] 하이파이뮤직 2017.11.03 221
공지 게시물 게시 원칙에 관한 안내 하이파이뮤직 2006.09.21 35071
2757 오디오파일들을 위한 도이치 그라모폰 명반들 [2] file 하이파이뮤직 2005.01.07 22924
2756 [연말특집]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명반리뷰 [4] file 하이파이뮤직1 2003.12.15 16926
2755 [신년특집] 드보르작의 음악들 file 하이파이뮤직 2004.01.02 14737
2754 피아노실내악 명반 탐구(3)- 피아노 4중주, 5중주 [3] file 하이파이뮤직 2003.09.19 14468
2753 리골렛또 비청회 녹취록 [7] file 하이파이뮤직 2004.07.20 14449
2752 우리의 새 명반 Opus #1 Trio Haan file 하이파이뮤직 2004.04.23 13908
2751 브루크너 2번 교향곡 탐구 file 하이파이뮤직 2004.01.19 12320
2750 제5회 하이파이뮤직 비청회 [1] file 하이파이뮤직1 2003.09.22 12233
» [Opera]Verdi - 돈카를로 리뷰 [5] file 하이파이뮤직 2006.12.04 11644
2748 미사곡의 이해 [10] file 하이파이뮤직1 2003.11.17 11213
2747 여름특집- 20세기의 명테너(4) - 카를로 베르곤지 - file 하이파이뮤직 2003.09.09 9959
2746 [re] 20세기 명반100선 (애호가님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6] 김호덕 2004.10.30 8849
2745 LP 레이블 산책(2)- 영국 HMV(EMI) SAX, ASD 시리즈 [2] file 김호덕 2007.09.18 8533
2744 Fossie file 김순호 2007.03.29 7880
2743 LP 레이블 산책(5) - 미국 RCA Victor [5] file 김호덕 2007.09.19 7562
2742 아날로그 명반백선 (12)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 file 김호덕 2005.11.14 7176
2741 [질문] 수입 LP 초반 감별법 [4] 김태영 2010.04.14 6637
2740 필립스 음반 레이블 관련 정보 질문 드립니다. [5] 윤용진 2014.05.04 6597
2739 LP 레이블 산책(1)- 영국 Decca SXL시리즈 [6] file 김호덕 2007.09.17 6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