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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공연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2004.12.03 16:39

조홍근 조회 수:3861 추천:153





간만에 글 올립니다.
한참 전에 어느 오디오 잡지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일전에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선호하는 작곡가에 대한 투표를 한 적이 있었다. 만약 과거의 작곡가들과 친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누구와 하겠으며 가장 친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를 재미삼아 꺼내보았다. 예상대로 친구하고 싶은 작곡가로는 신앙심이 두텁고 성실한 삶을 살았던 바흐, 항상 성실했고 유머감각이 풍부하고 초지일관한 하이든, 명랑하고 유쾌하고 섬세한 슈베르트, 재기 넘치고 활기찬 모짤트였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친구하고 싶지 않은 작곡가의 명단이었는데 첫째는 역시 바그너였다. 바그너야 일찍이 알버트 아인쉬타인이 작곡가의 인격과 그의 작품을 분리하고 싶어했던 – 어떻게 이런 위대한 작품이 이런 비속한 인물에서 나올 수 있을까_ 대표적인 사람이었으니까 전혀 놀랍지 않았다. 대표적인 Wagnerite인 지휘자 바렌보임조차도 Edward Said와의 대담에서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어하지 않는 지휘자로 바그너를 꼽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의 인물들이었는데 바로 베토벤과 브람스였다. 베토벤은 강한 자기중심적인 성향과 다듬어 지지 않은 무례함이 그 이유였다. 나 또한 베토벤의 음악은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와 같이 지낸다고 생각하면 아주 부담스럽다. 상식적이지 않은 돌출성, 괴퍅한 심성과 주변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자기만의 논리전개는 정말 피곤할 것 같다. 그의 총체적 인격의 결과물인 음악은 좋아하면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단물만을 빨아 먹겠다는 야박한 심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에 대한 선호는 합리성이 개입하기 힘든 부분이라는 말로 변명을 대신하였다. 그런데 왜 브람스인가? 그가 바그너만큼 역겨운 인물이었는가? 아니면 베토벤만큼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었는가? 그가 뽑힌 이유는 오히려 음악내적인 이유였는데,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강한 고집과 신경질적인 반복과 내적인 분열과 가학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사람은 브람스의 음악이 좋다고 했으니 브람스나 그렇게 말한 사람은 굉장히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되었다. 나 역시 브람스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그의 어떤 음악을 듣다보면 그가 대단히 화가 나있고 청중을 학대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음악의 texture는 두텁고 표면은 거칠어서 쉽게 친해지기 힘들다. 음악의 전개는 고집스럽고 진득진득해서 내적인 에너지로 충만하다. 따라서 그의 음악은 여름에 듣기에는 너무 덥다.
그러나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작곡가 역시 브람스이다. 노변 까페에서 커피의 진한 향을 맡으며 듣고 싶은 음악은 바로 고동색 톤의 브람스이며, 비스듬이 비추는 부드러운 햇볕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가을 바람에 편안히 몸을 맡기며 듣고 싶은 음악 역시 브람스이다. 마로니에 공원의 어느 벤치에 않아 빨간 색이 막 들기 시작한 단풍을 보며 그의 비올라 소나타를 듣는 것은 최고의 감각적인 쾌락이었다. 내게 봄은 모짤트의 계절, 여름은 시벨리우스의 계절, 겨울은 하이든의 계절이듯이 가을은 브람스의 계절이다. 왜 가을은 브람스의 몫인가? 그 것은 노스탈쟈 때문이다. 옛 것에 대한 회한과 아름다운 회고.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지만 그 것은 여름을 추수하는 것이지 생산의 잠재력은 고갈된 불임의 계절이다. 찬란했던 여름을 회고하며, 다시 올 봄을 기다리며 흰색의 겨울로 들어가는 문턱. 이 것이 바로 가을이 노스탈쟈인 이유이다. 브람스는 노스탈쟈의 인간이다. 브람스는 늘 그가 너무 늦게 태어난(posthumous) 사람이라고 아쉬워했다. 독일 음악의 황금기인 바흐, 하이든, 모짤트, 베토벤, 슈벨트 등이 이룩한 음악적 성과를 존경하면서도 그들이 브람스가 할 수 있는 영역을 하나도 남겨 놓지 않은데 대해서 늘 아쉬워하였다. 다방면에 능숙하고 욕심사나운 바그너가 신예술의 새벽을 열었다면 그는 앞을 바라보기 보다는 차라리 밟아 온 길을 되짚었으며 선배들의 기념비적인 성과를 더욱 공들여서 심화시켰고 마침내 그 것으로 완결적인 거대한 기념비를 쌓았다. 바흐가 그러하듯이 브람스는 한시대의 집대성이자 그러나 불임의 자기완결적인 마감이었다. 바그너가 신새벽이라면 브람스는 해 저물기 전의 장대한 낙조라 하겠다. 그래서 브람스는 늘 쓸쓸하다. 가을은 그래서 브람스의 계절이다.
브람스는 또한 에로틱하다. 브람스의 어디가 에로틱하다는 것인가? 그의 음악의 표피에서 에로틱의 “에”짜도 느낄 곳이 있는가? 그의 음악은 대개가 거칠고 광포하다. 그러나 고슴도치 같이 거친 음악의 표면과는 달리 기저에는 미끄러우면서도 관능적인 에너지가 꿈틀대며 흐른다. 두텁고 거친 음악의 texture를 뚫고 그의 음악은 때로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ecstasy를 경험하게 하는 미약이다. 그의 교향곡을 들어보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와는 다른 관능적인 에너지가 흐르지 아니한가? 그것은 불임의 에로스이다. 그의 현실생활에서도 사랑하는 이와 맺어지지 못하였고, 아니 맺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끊임 없이 회피했듯이, 음악에서도 에너지의 응축이 폭발로 이어지는 대신, 깊이 깊이 내면화된다. 베토벤이 운명을 때려 부셨다면 브람스는 내면화하여 자신 안에서 초극하였다. 베토벤이 태양이라면 브람스는 음습하고 불가해한 달이다.
나는 그의 실내악에서 거칠면서도 달콤한, 그리고 노스탈직하고 에로틱한 그의 음악을 십분 만끽해왔다. 특히 현악기의 멜랑콜리하고 거친 음색과 약간은 밝고 영롱한 피아노 반주가 특징인 비올라, 바이올린 소나타는 먹어도 먹어도 싫증나지 않는 밥과 같은 존재이다. 그 중에서도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 major, op 78은 매년 가을의 초입에 나와 함께하는 곡이다. 이 곡은 브람스의 일생 중 가장 좋았던 시절에 작곡된 것으로 교향곡 2번과 피아노 랍소디 op 79번 사이에 위치한다. 과히 어둡지 않은 달콤한 우수와 멜랑콜리가 교차하는 곡으로 초코렛의 향과 색이 난다. 3악장의 주제가 그의 가곡 Regenlied(비의 노래)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비의 소나타(Regen sonata)라는 별칭으로도 불리운다. 3악장 구조로 청명한 하늘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악상의 1악장 Vivace, 우수에 가득찬 비극적인, 그러나 달콤하고 표현적인 2악장 Adagio, 2악장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달콤한 3악장 Allegro molto moderato로 구성되어있다. 3악장은 앞서 말한 대로 비의 노래의 주제와 유사한데 클라라는 이 악장을 무척 사랑하였다. 클라라는 그녀의 72세 생일에 브람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실질적인 고별사를 이 악장에 대한 언급으로 마무리하였다. “ 나는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이 내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여행에 함께 해주기를 늘 바래왔어요. 안녕, 당신의 행복과 건강을 빌어요. 영원한 당신의 클라라”.  젊은 시절 이 곡을 들으면서 많은 탄식을 하였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치기가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쓸데 없는 감상이 많이 줄고 감정이입이 안되어서 소설도 읽지 못할 정도로 현실적이 되어버린 지금, 이 곡은 역설적이게도 더욱 더 노스탈직하다. 이 곡과 함께 했던 순진했던 젊은 날도 함께 그리워하게 된 연유일 것이다.
브람스의 곡은 희안하게도 절대적인 명반이 드물다. 워낙에 곡이 표현하여야 할 면이 중층적인데다가 기교적인 것 또한 까다로워서, 브람스의 노스탈쟈를 공감할 섬세한 가슴과 더불어 강철의 손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주가 기교적으로 훌륭하나 건데기가 하나도 없는 공허한 것이 되거나, 반대로 마음은 절절히 브람스이지만 기교의 불완전으로 인해 들어 주기 민망한 경우가 많다.
요셉 수크와 줄리어스 카첸의 연주(Decca, SXL  LP)는 이 곡의 양면성을 잘 표현한 명연이다. 다른 연주와는 달리 피아노 음에 무게가 실려있다. 피아노의 표현이 단순한 반주를 넘어 솜털처럼 가볍기도 하며 빌로도처럼 부드럽지만 때로는 천근의 무게로 다가와 가슴에 꽂힌다. 브람스 피아노 독주곡 전곡에서 명연을 들려준 카첸이기에 가능한 연주로 생각한다. 감정의 흐름이 시종일관 끊김 없이 굵게 표현된다. 격정적인 부분과 정적인 긴장감을 유발하는 부분을 순발력 있게 넘나들어 25분에 가까운 시간이 순간처럼 느껴진다. 브람스의 격정과 부드러운 우수가 동시에 잘 표현된 훌륭한 연주라고 생각한다.
Christian Ferras와 Pierre Barbizet의 연주(DG,104 985, LP)는 시적인 감각이 일품으로 어둡고 거친 면이 여과되고 곡의 감각적인 아름다움이 부각된 수연이다. 청명한 가을하늘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1악장과 비의 노래 3악장에서 빌로도 표면 같은 바이올린의 음색이 인상적이다. 피아노의 표현이 조금 단순하여 2악장에서의 내면성의 깊이가 조금 아쉽다. 그러나 페라스의 비단결 같은 바이올린톤으로 들려주는 우아하고 상큼한 프랑스적인 브람스는 아주 인상적이다.
Leonid Kogan과 Andrei Mitnik의 협연(Columbia, 33CX, 1381, LP)는 코간 특유의 은색 광채에 빛나는 톤을 들려준다. 그러나 발군의 순발력과 치밀함으로 기억되는 프로코피예프와 베토벤 협주곡의 명연과 달리, 이 연주에서는 브람스 특유의 우수와 달콤함을 표현하는데 실패한 것 같다. 감정이입과 거리가 먼 바이올린 파트와 단순히 반주자 역할 밖에 못하는 피아노가 곡을 마냥 심심하게 만들고 있다. 브람스는 이 곡에서 두 악기의 음량의 발란스를 맞추는데 성공하게 되는데, 이 연주는 오히려 바이올린이, 음량면에서나 표현면에서나 전 악장을 주도하게 되어 두 악기의 대화에서 생성되는 긴장감을 망쳐놓고 있다.
재미있게도 그 반대의 경우를 Oleg Kagan과 Sviatoslav Richter의 연주(Live Classics, LCL 183, ADD, CD)에서 볼 수 있다. 일단 이들의 연주에는 피아노가 바이올린을 압도하고 주도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피아노가 대부분 능동적이고 주도적이어서 배경이 되어 주어야 할 때도 가끔 앞으로 나서서 꼭 바이올린 반주가 딸린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 기분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 곡의 부드럽고 달콤한 우수보다는 거칠고 광폭한 면의 표현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템포도 약간 빨리 잡아서 운동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지만 대신 내면성이 희생되었다. 물론 2악장에서 표현되는 우수와 내면성은 평균 이상이지만 1, 3악장의 정서와 조금은 이질적이다. 더구나 3악장은 비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너무 빠르다. 그러나 리히터의 피아노 협연은 아주 매력적이고 리듬감이 넘친다.
Kagan-Richter조의 또 다른 반대편을 Lola Bobesco-Jaques Genty의 연주(talent, DOM 2910 02, CD)에서 볼 수 있다. 이곡이 가지는 섬세한 흐름에 주력하려는 콘셉이 특징인데,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지만, 브람스 특유의 역동성과 긴장감이 거세되어 순전히 사색하는 브람스가 되어버렸다. 템포를 대단히 천천히 잡고 음표 하나 하나를 또렷이 발성한다. 어떤 곳에서 대단히 명상적이어서 좋지만, 다른 곳에서는 운동감이 상실되어 싱거워진다. 그러나 2악장에서는 어느 정도 강점이 되어 특유의 분위기를 일궈낸다. 표준적인 연주에서 제일 멀리 나간 연주로 생각된다.
미래의 장인과 사위가 협연한 Adolf Busch-Rudolf Serkin의 연주(APR, 5542, ADD, CD)는 나의 명연 중 하나이다. 이 곡을 듣게 되면 처음부터 놀라게 되는데, 연주 때문이 아니라 원본 SP에서 나오는 엄청난 잡음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리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연주는 호연이다. 과도하게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템포에 감정선을 제대로 살린 구성과 두 악기 사이의 균형 등, 장점이 많은 연주이다. 2악장에서 두 악기 사이의 대화와 긴장감의 조성은 이들의 연주가 온전한 duo라는 것을 증명한다. 2악장을 아쉬어 하는 3악장에서의 모티브의 유기적인 표현은 안녕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한다. 비브라토가 비교적 억제되어 있고 덤덤하고 간결하지만 결코 무미건조하지 않다. 아마 음질 때문에 표현력의 상당한 부분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
Henryk Szeryng-Arthur Rubinstein조의 협연(RCA, 6264, ADD, CD)도 세간에서 좋은 평을 받는 대표적인 연주이다. 브람시안이기도 한 루빈쉬타인의 투명하고 영롱한 피아노가 듣기 좋다. 그러나 쉐링의 바이올린이 조금 더 격정적이고 깊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움을 모르는 자는 브람스를 연주할 자격이 없다. 마냥 감상에 젖어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고 싶을 때는 페라스의 연주를 듣고 싶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린 한세대를 통째로 그리워하고 싶을 때는 숙크와 부쉬의 연주를 듣고 싶다. 브람스는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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