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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공연

투란도트 쇼를 다녀오다

2003.05.25 08:17

용호성 조회 수:4180 추천:169

상암에서 열린 투란도트쇼에 다녀왔습니다. 뭐 사실 그다지 끌리는 공연은 아니었습니다. 좋아하는 공연이야 10만원 그 이상이라도 아까울게 없지만 이번 공연은 사실 공연이라기 보다는 스펙터클한 쇼에 가까웠기 때문에 공연 그 자체로서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우연찮게 얻게된 초대권으로 가게 되었죠. ^^;

이날 공연은 볼거리의 측면에서 한 번 가 볼만한 자리이기는 했습니다. 거대하게 재현된 세트는 상암이 아니었다면 느끼기 힘든 스케일이었고, 조명과 의상으로 연출된 현란한 색채감은 과연 장 이머우의 무대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기서 무대라는건 협의의 개념이었습니다. ^^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장 이머우는 눈은 좋은데 귀가 좀 어두운 모양입니다. 그만한 무대를 만들 정도의 정성과 노력의 10분의 1만 기울였던들 그토록 처참한 음향효과가 나오지는 않았을테니까요.

물론 제가 상암 경기장에서 빈 가극장이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음향을 기대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상암경기장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쇼무대였을지라도 그 장소의 특성과 장점을 이용하여 관객들을 압도할 만한 음향적 연출을 할 수 있었을텐데 이 점에 관한 한 연출에 의한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징소리가 울리는 장면 같은 경우 그 환상적인 조명효과에 스피커의 배치 등에 의한 음향적 연출이 더해졌다면 아마도 그 장면만으로도 투란도트는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상암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고작해야 앰프로 증폭된 솔로 성악가들의 목소리뿐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이처럼 무너진 음향 밸런스로 인해 투란도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어우러진 벅차오르는 듯한 장대함은 별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아울러 극의 진행에 관한 "연출가" 장 이모우의 특성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오페라라고 하는, 대사와 음악이 정해져있는 콘텐츠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연출력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암이라고 하는 거대한 가능성을 가진 텅 빈 공간에서 고작 스케일감 있는 세트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좀 무성의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 한계를 확인했던 자리라는 점에 아쉬움이 남는 것입니다.

아마도 장 이머우라는 연출가에 대한 저의 기대가 좀 컸었던 모양입니다. 만약 장 이머우가 비슷한 중량감의 연극 연출가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최소한 장 이머우처럼 평면적이고 기차처럼 좌우로만 왔다갔다 하는 식의 무대와 동선 구성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솔로 성악가들의 노래는 별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칼라프 왕자역의 테너 니콜라 마르티누치(Nicola Martinucci)나 여자 노예 류’역의 알렉산드라 파체티는 아주 빼어난 가창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투란도트 공주역의 소프라노 조반나 카솔라(Giovanna Casolla)는 열창과 아울러 열연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투란도트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모범적인 전형을 보여주는 연기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남는 느낌은 오페라가 아니라 하나의 스케일 있는 쇼를 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뭐 사실 그러리라는 예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늦은 봄밤의 쌀쌀함만큼이나 허전함이 남았던 자리였습니다.

시나몬.


* 아래 사진은 조선일보에 실린 관련기사 사진을 링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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